[시승기] 추위까지 잊은 낭만, 레인지로버 이보크 컨버터블

[시승기] 추위까지 잊은 낭만, 레인지로버 이보크 컨버터블 【카미디어】 윤지수 기자 = 처음엔 두 귀를 의심했다 눈이 펑펑 내린 후, 곳곳에 한파경보까지 내려진 요즘, 오픈카를 시승하라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어이없는 상황은 현실이 됐고, 혹독하게 추웠던 지난날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이보크 컨버터블을 만났다 덕분에 눈 위를 오픈카로 달리는 기가 막힌 ‘호사’를 누렸다 심란한 기분으로 만난 이보크 컨버터블은 마치 ‘자동차 스케치’를 보는 것 같았다 짧은 차체에 거대한 타이어를 달았고, 얇은 옆 유리창은 두꺼운 문짝과 대조돼 더 얇아 보였다 자동차를 그릴 때, 멋을 내기 위해 그렸던 과장된 비율들이 그대로 녹아든 모양새다

평평한 소프트톱도 눈길을 끈다 보통 천 재질 소프트톱은 쭈글쭈글 주름져, 지저분해 보이기 마련인데, 이보크 컨버터블은 철제 지붕에 천을 덧씌운 것처럼 팽팽하다 덕분에 지붕을 닫아도 실루엣이 깔끔하다 두툼한 (유리창 틀이 없는) ‘프레임리스 도어’를 열고 들어선 실내는 일반 이보크와 같다 다만 지붕이 검은색 천으로 바뀌고, 뒷좌석이 좁아졌을 뿐이다

밖에서 볼 땐 천장 높이가 낮아 답답할 것 같았는데, 직접 앉아보니 머리 공간은 여유롭다 뒷좌석도 성인 남성 두 명이 오랫동안 앉아있어도 될 만큼 편하다 너비는 좁지만, 머리 공간과 무릎 공간만큼은 웬만한 4도어 콤팩트 세단보다 넓다 스타트버튼으로 시동을 켜면, 20리터 4기통 인제니움 디젤엔진이 묵직하게 깨어난다 서서히 움직일 때의 주행감은 영락없는 이보크다

보통 지붕을 덜어내면 주행감이 헐렁해지는 경우가 많지만, 이보크는 끄떡없었다 어떤 도로를 지나도 2톤의 돌덩어리 같은 차체는 묵직하게 흔들리기만 할뿐, 삐걱거리는 소리하나 없었다 외부 온도 –6도, 도저히 아늑한 지붕을 열고 싶지 않은 날씨다 하지만, 지붕을 열지 않으면 이보크 컨버터블을 탄 이유가 없을 터다 이를 악물고, 센터콘솔의 열림 버튼을 눌렀다

옆 창문이 내려가고, 지붕이 뒤로 빠지면서 찬 바람이 들이닥친다 이른 아침 ‘5분만’이라고 외치는 내 이불을 어머니께서 활짝 걷어낸 것처럼 무방비 상태의 추위가 몰려왔다 다시 닫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이미 ‘뚜껑’은 열렸다 시트와 핸들에 들어간 열선을 켜고, 히터를 ‘풀-파워’로 돌렸다 물론 창문은 모두 올린 상태다

따뜻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자, 이내 마음이 편해진다 머리 위에선 여전히 무거운 찬 공기가 내려오고 있지만, 제법 버틸만하다   “그래도 달리면 더 따뜻할걸?” 오픈카를 탄다니 한참을 비웃던 선배가 해준 조언이다 그걸 믿고, 변속기를 ‘D’에 놓은 후 출발했다

다행히 선배 말에 거짓은 없었다 창문을 모두 닫고, 히터를 최대로 켠 상태에서 달리니, 서있을 때보다 오히려 낫다 이따금씩 냉수 같은 찬바람이 몸을 휘감긴 하지만, 이내 히터가 따뜻하게 덥혀준다 시원하면서 따뜻하다 주변의 정신 나간 사람을 보는 듯 쳐다보는 눈길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실내는 따뜻했다

살짝 부끄럽기도 하고, 파란 하늘도 보이며, 따뜻하지만 이따금씩 찬바람이 정신을 맑게 해주는 게, 딱 ‘노천탕’에 앉아있는 기분이다 추위를 잊자, 뚜껑 열린 오픈카의 매력이 다가온다 파란 하늘 아래, 따뜻한 레인지로버 시트에 앉아 이따금씩 들어오는 찬바람을 만끽하니, ‘힐링’이 따로 없다 어제 들었던 편집장의 잔소리도, 쌓여가는 돈 걱정도 뚫린 천장으로 속 시원하게 날아간다 촬영 장소에 도착해 소복소복 눈을 밟는 재미도 누렸다

하얗게 펼쳐진 눈밭에서 지붕을 연채 4륜 구동 차를 타고 달리는 자유로움은 글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탁 트인 시야는 눈을 즐겁게 했고, 랜드로버의 4륜 구동은 든든하게 굴러갔다 컨버터블 SUV만이 줄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이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지붕을 닫고 출발했다 예상외로 소음 유입이 적어, 실내는 조용하다

천장에서 바람소리가 살짝 들려오긴 하지만, 노면 소음은 철저히 억제돼있다 특히 바퀴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레인지로버’라는 이름에 걸맞게 잘 차단된다 이보크 컨버터블의 ‘달리기’ 성능은 일반 이보크와 같다고 보면 된다 최고출력 180마력, 최대토크 439kg

m의 20리터 인제니움 디젤 엔진은 저속에선 두터운 토크로 가볍게 가속하지만, 고속에선 살짝 힘이 빠진다 든든한 서스펜션과 묵직한 차체 덕분에 고속 안정감은 수준급이다 다만 2톤에 달하는 무게 때문에 민첩하진 않다 시승 중 기록한 이보크 컨버터블의 연비는 리터당 13km였다 20리터 디젤 엔진이 들어간 작은 SUV인 걸 생각하면 선뜻 이해되진 않지만, 2톤이 넘는 육중한 무게와 거대한 타이어를 생각하면 리터당 13km의 연비가 사뭇 놀랍게 느껴진다

참고로 이보크 컨버터블의 공인연비는 리터당 124km(도심 108km/L, 고속 151km/L)다   ▲ 레인지로버 이보크 컨버터블의 가격은 8,020만원~9040만원이다

시승차는 8,020만원의 SE 다이내믹 모델이다한 겨울 레인지로버 이보크 컨버터블의 추위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다 지붕을 열어도 히터와 열선이 워낙 ‘빵빵’해, 따뜻하게 ‘오픈 에어링’을 즐길 수 있었다 특히 하얀 눈밭 위에서 뚜껑을 열고 달리는 황홀함은 컨버터블 SUV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설경이 아닌, 푸르른 녹음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을 터다

지금은 ‘별종’이지만, 컨버터블 SUV만의 매력은 충분했다